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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Photography

유진 스미스 W. Eugene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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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스미스(1918~1978 위키 [링크], 매그넘 포토스 작가 소개 [링크])는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뉴스위크의 기자로 사진 일을 시직했습니다.

1930년대, 당시의 필름은 지금에 비하면 아주 형편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매체들이 중형 포맷(6Cm 필름. 120)을 선호했지요.

135(35mm 필름)는 당시 못믿을 필름 취급을 당했고,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중형의 넓은 필름 면적에서 나오는 결과물과 135의 결과물은 꽤 차이가 컸고, 현장 취재를 하는 기자들이나 심지어 종군기자들도 그 크고 무거운(지금 기준으로) 중형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135용의 사진기도 라이카 정도가 아니면 튼튼하고 신뢰성 있게 만드는 곳이 드물었고...

(흔히 이야기하는 라이카의 튼튼함과 명성은 바로 이 시절 이야기죠. 지금은 어느 회사든 잘 만듭니다)

135 사진기가 맹위를 떨치게 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Eli Reed도 그렇지만, 자기 덩치에 안맞게 작고 가벼운 카메라를 선호하는 작가들이 종종 있지요.

아무튼...

유진 스미스는 중형을 사용하라는 회사의 방침을 가볍게 무시하고 135로 작업을 많이 하였는데, 그 때문에 해고 당합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DSLR로 찍어 오랬는데, 기자가 귀찮다고 폰카나 똑딱이로 찍어온 정도랄까요.

물론 디지털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 지금에 와서는 똑딱이나 폰카 사진도 DSLR 못지 않은 품질을 자랑합니다만...

당시 기준으로 코딱지만한 필름에 사진을 담아오니 해고 당할만 하지요.

 

그 후 유진 스미스는 라이프에 입사하지만 역시나 자기 사진이 제멋대로 트림 당하는 걸 보고는 라이프를 관둡니다.

 

1971년부터 일본인 아내와 함께 미나마타에 거주하면서 수은중독(미나마타병)의 참상을 사진으로 알리는 등 환경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 와중에 미나마타병의 원인을 제공한 회사인 칫소가 고용한 용역 폭력배에게 심하게 폭행당해 한쪽 눈을 실명하고 척추를 다치는 등의 중상을 입기도 합니다.

 

유진 스미스에 대한 좋은 말은 구글 검색을 해보면 꽤 나오기 때문에 좀 안좋은 얘기를 적어보지요.

그는 라이프를 관두고 1955년 매그넘 포토스에 들어갔는데...

매그넘의 편집자들은 그를 "문제아"라고 불렀습니다.

의견충돌이 잦고 자신의 사진에 조금의 개입이나 간섭도 허용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진 스미스 최대의 흑역사라면 역시 "피츠버그" 작업이겠죠.

그는 매그넘 포토스와 구겐하임 재단의 돈으로, 장장 3년에 이르는 프로젝트인 피츠버그 촬영에 들어갑니다.

공업도시 피츠버그의 풍경과 사람들을 3년여에 가까운 시간 동안 회사돈으로 담았는데,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모두 공개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3년 동안 쓴 비용 때문에 매그넘 포토스가 제정적인 부담을 안게되어 문을 닫게 될 위기까지 왔었습니다.

그리고 피츠버그 작업을 마치고 1959년에 매그넘 포토스는 탈퇴.

훌륭한 먹튀되시겠습니다.

왜 문제아라고 불렸는지 대충 짐작 할 만 합니다.

 

유진 스미스는 국내에서는 사진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암실작업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는 원본 필름을 그대로 인화하는 것이 아니고, 닷징, 버닝, 블리칭 등 다양한 기법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포토샵의 달인"이었던 것이죠.

필름 시대에는 사진 촬영도 중요했지만, 필름을 현상하고, 종이에 인화해내는 암실 기술도 사진가들의 필수 소양이었습니다(사진이 배우기 어렵다는 것은 이 부분 때문이었죠. 요즘은 찍고 인화하고 모든 작업을 컴퓨터와 사진기, 기계가 알아서 해주니... 옛날과는 난이도 자체가 다릅니다).

암실 작업에 자신이 없는 사진가는 후작업을 전문가에게 맞겨야 했고, 능숙한 암실 작업 전문가는 사진가 이상으로 대우받았죠.

그래서 당대의 유명한 사진 학원들은 촬영은 기초로 취급했고, 실제로는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암실작업의 비법도 같이 전수하였습니다.

디지털만 접해 본 사람들이 필름 사진은 후보정이 없다는 둥의 헛소리를 많이 하곤 하는데, 필름사진 시대에는 오히려 후보정을 모르면 자신의 의도를 완성된 사진에 남기기 어려웠습니다.

촬영도 촬영이었지만 유진 스미스는 암실작업에서 타협이 없었으며, 이 때문에 까칠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엉성한 정보들이 많아, 생각난 김에 기록용으로 남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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