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이전에도 수요자 중심의 탈 중앙 교환 시스템이 존재 했습니다.
비트토렌트[링크]죠.
P2P(peer-to-peer) 방식으로 서버-클라이언트가 아닌, 개별 수요자가 직접 데이터를 교환합니다.
각 토런트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트래커(tracker) 서버라는 것이 있지만, 현재 제안되어 있는 버전의 비트토렌트는 트래커 서버가 없이도 작동 할 수 있습니다.
2001년경 제안되어 현재 한국에서는 불법복제된 영화나 야동 파일 등이 오가는 도구로 많이 이용되고 있죠...
신기술이 삶을 윤택(?)하게 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 대 개인간의 인터넷망을 통한 직접 교환이라는 아이디어는 인터넷 탄생 직후부터 늘 있었습니다.
비트토렌트의 작동 원리를 모사한 gif입니다. 실제 파일 교환이 사용자들 사이에서(서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일어난다는 소리죠.
비트코인은 야심차게도, 블럭체인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P2P 금융 거래를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리고 블럭체인을 이용한 최초의 성공적인 사례이자, 규모로 봤을 때에도 최대의 성공 사례가 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저도 그거 뭐 되어 봤자 얼마나 잘 되겠어, 했었는데요...
그리고 "중국"이라는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최대의 약점이자 불확실성이 존재 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알아서 암호 화폐(Cryptocurrency; 국내에선 가상 화폐라고들 합니다만 적절한 용어는 아닙니다)를 금지하고 나서면서 비트코인의 가치는 수직 상승 했습니다.
비트코인의 아이디어 자체는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사람들끼리, 수수료를 떼어먹는 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를 할 수 있다면 마다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과거의 인터넷은 느렸고, 아이디어가 구현될 기술적 기반도 부족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인터넷 회선의 속도가 빨라지고, 비트토렌트 같은 실제 P2P로 작동하는 네트워크도 생겨났죠.
그리고 2007년, 미국 업계 2위의 대마(大馬)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을 신청하면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고도 부르는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금융 시장의 맹점을 잘 보여주었고 미국, 나아가 전 세계에 큰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이대로 괜찮은걸까?
수 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금융위기는 미국뿐이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월 스트리트의 부자들은 성과급과 보너스 잔치를 벌여 빈축을 사기도 했죠.
한국도 IMF로 원화의 가치가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되는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시스템이 계속되면다면,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날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엔지니어가 자신이 제3자에 의존하지 않는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며 논문을 하나 냅니다.
논문은 당연히 영어이나, 많은 사람들이 번역해 놓아서 한글판[링크]도 여럿 있습니다.
한번쯤 읽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용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이해하기 쉽습니다.
기술 발달이 축적되고, 인터넷 망의 레이턴시가 개선되었으며, 거기에 금융위기가 벌어지는 등,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습니다.
토머스 S쿤 같은 사람은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 발전이나 진보는 나선형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통해 비약적인 break-through가 일어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만…
그 기반이 되는 기술적, 학문적 토양이 없이는 그 특이점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비트코인의 등장과 블럭체인의 성공적인 작동은 모든 것이 맞물린 시대적인 필연에 가까웠던 것이죠.
비트코인의 시스템은 굉장히 절묘합니다.
아이디어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그것을 구현해서 돌아가게 만든 것은 실로 천재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트코인에 참여한 사람들은 채굴(mining)이라고 알려진 행위를 통해 비트코인 거래를 검증하게 됩니다.
아무 보상도 없이 그런 일을 할 사람은 당연히도 없을 것이므로, 거래 검증을 성공적으로 해 낸 사람에게는 비트코인 자체가 포상으로 주어집니다.
때문에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참여한 사람들은 새로운 비트코인을 얻어내기 위해 채굴을 계속하게 됩니다.
채굴 자체가 비트코인을 생산하며,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런 방대한 네트워크가 결국은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돌아간다는 점에서, 개인의 이기심이 공익에 기여 할 수 있다는 공리주의 철학이나,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고전 자본주의 원리가 떠오르게 됩니다.
더불어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개별 사용자들의 참여로 성립되기 때문에, 국가나 특정 기업이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만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금융거래는 국가나 특정 사기업의 신뢰 보증을 기반으로 움직였고, 국가는 그 대가로 세금을, 사기업들은 수수료를 받아 챙겨 왔습니다.
비트코인은 이런 중개자들에게 세금이나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는 거래가 되는 것입니다.
국가의 개입 없는 완전한 탈중앙 시스템으로 이 부분은 실로 랜선을 타고 흐르는 아나키즘이라고 할 만 합니다.
블럭체인으로 중앙통제에서 벗어난, 이상적 거래를 할 수 있는 미래...
기대해 볼만한 미래상 아닐까요?
물론... 시스템이 인간이 가진 악의와 이기심으로 인해 오염되는 것은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인터넷은 그 초창기에, 정보의 바다라는 기대와 이상에 부푼 별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가짜뉴스와 반지성주의가 퍼지는 가장 주요한 수단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구멍을 메워가며 약점을 보완 한다면 블럭체인으로 이뤄지는, '수수료와 중개자 없는 공평하고 깨끗한 거래'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비트코인은 거래에 한 시간~두 시간 정도의 긴 시간과 높은 transaction fees로 인해 화폐로서의 기능을 하긴 어렵습니다.
거래에 한 시간이 걸리는 결제 수단을 이용 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특히 국내 거래소들은 시세를 조작하고 있다거나, 폰지 사기가 아니냐는 등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트코인은 지금으로서는 투기의 수단으로 변질 됐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블럭체인에 인력과 자본이 몰려들고 있고, 비트코인(비트코인 코어) 그 자체가 개선 될 수도 있으며, 보다 발전한 또 다른 대안이 반드시 등장 할 것입니다.
세상은 악하고 인간은 해롭습니다.
그렇다고 아키텍트가 이상론을 버릴 순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감옥 만을 지어야 할테니까요.
섣부른 낙관은 위험하겠지만, 비트코인과 블럭체인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 참고로, 최소한 비트코인의 역사[링크]나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링크] 정도는 읽어 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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