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3일 만에 끝날 것이라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반년을 넘겨 겨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소 구식 장비들로 무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는 이미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미국 다음가는 군사 강국으로 평가 받아 왔습니다.
1, 2차 체첸 전쟁, 조지아 전쟁 등으로 쌓은 실전 경험과, 전쟁 이후 괴뢰 정부를 수립하며 보인 푸틴의 정치적 수완 등을 근거로, 우크라이나 전쟁도 러시아의 승리로 빠르게 마무리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개전 일주일만에, 러시아군은 당시 투입한 병력과 장비의 40%를 잃었습니다.
수도 키이우(키예프) 공략에 실패 한 것은 물론, 장성급 고위 장교가 포로로 사로 잡히거나 전사 하는등... 전쟁 반년을 돌아보면 현재로서는 러시아의 패배나 다름 없는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이제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여 러시아군을 박살내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러시아에게 강점 당한 크림 반도까지 되찾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러시아가 정신을 못차리고 패전을 거듭하고 있다보니, 젤렌스키의 장담이 허풍으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무기 원조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전과를 올리고 있는 것은 사실 기적입니다.
미국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막대한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도 베트콩과 [탈레반]에게 패배 했습니다.
멕시코에는 매년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마약 카르텔을 뿌리뽑지 못하고 있죠.
돈과 무기가 있어도 그걸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인적 자원이 저질이면 아무리 산더미 같은 무기가 있어도 무용지물입니다.
전황은 러시아에게 점점 불리해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친미 정부 전복이라는 개전 당시의 목표는 이미 물건너간지 오래고, 돈바스 지역이라도 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인 상황.
하지만 푸틴에게는 아직 몇 장의 히든 카드가 남아있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것 처럼 보이는 푸틴이 무슨 짓을 더 벌일지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습니다만...
그나마 푸틴이 가진 비책들을 뽑아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핵폭탄
서방의 군사 지원으로 인해 이제 "장비빨"은 우크라이나가 더 좋습니다.
전쟁 전까지 러시아의 기갑전력은 미국 다음이라고 할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재블린 미사일]을 사실상 무한으로 지원한 덕택인지, 개전 후 러시아는 600여대 이상(한국은 2,000대 정도의 전차를 운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의 전차를 잃었고 때문에 세간에서는 "전차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결국 남은 비대칭 전력이라고는 [핵폭탄] 정도...
고령과 지병, 그리고 전황 악화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푸틴이 히스테릭하고 무책임한 결정, 즉 핵병기 사용이라는 사고를 칠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게 된 상황입니다.
러시아가 전술핵을 사용 할 경우 서방도 핵폭탄으로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높고, 결국 핵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다만 러시아의 핵폭탄 "버튼"은 미국과는 달리 각 미사일 운용 기지 사령관의 자율적인 판단까지도 포함한 시스템이어서, 푸틴이 핵폭탄 발사를 명령해도 사일로 지휘관의 양심에 따라 항명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순간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기는 했지만, 푸틴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래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2. 체첸과 벨라루스
소련이 러시아 연방으로 쪼개지고 국력이 예전과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몇몇 위성국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번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은 체첸과 벨라루스입니다.
이미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러시아 군대에게 길을 터주고 있어 전쟁에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고, 체첸 같은 경우 연대급 이상의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투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황이 더욱 나빠질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이들 위성국에 쪼개준다는 등의 파격적 인센티브를 흔들어댈지도 모릅니다.
체첸 같은 경우 체천 전쟁 이후로 러시아의 위성국가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체첸은 러시아로부터 장비를 지원 받아 지원군을 보낼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합니다.
28년간 독재자가 군림하고 있는 벨라루스는 단순히 진격로만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군 사령부 주둔을 허용하고 있을 정도로 전쟁에 깊게 개입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항공기 발진기지가 벨라루스 영토 내로 확인 된 바가 있는 상황에서, 푸틴의 요청에 응해 벨라루스의 병력이 전투에 가담 한다고 해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3. 중국
냉전 이후 중소 관계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중국과 러시아를 혈맹이라 불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미국과 통상 전쟁은 물론 대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전쟁에 직접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만, 그게 또 알 수 없는 일이죠.
미국의 통상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러시아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건다면 중국인민군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략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국은 6.25 전쟁 당시에도 "인민지원군"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전쟁에 개입하여 북한 정권 붕괴를 막아낸 바가 있습니다.
이미 중국 언론사 기자들은 물론, 중국 무관들이 우크라이나 영토 내의 러시아군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바가 있고, 얼마전 시작된 러시아의 보스토크(동쪽이라는 뜻) 2022 연합 훈련에도 중국은 보란듯이 대규모 병력을 파견 했습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느낌이죠.
무엇보다 러시아가 승리해야 중국이 대만을 침탈하기에 유리해집니다.
러시아가 이기게 되면 국제사회, 즉 서방 1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멍에를 짊어지게 되며, 이는 대만을 침략할 명분과 찬스를 중국에 주는 셈입니다.
이미 2014년 크림반도가 넘어간 상황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러시아가 이긴다면, 이는 단순히 우크라이나의 패배가 아닌 미국과 유럽의 패배가 됩니다.
때문에 중국도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가 지는 걸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독재자 시진핑]은 참전이 유리하다는 계산이 서기만 한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4. 겨울
첫번째 푸틴의 히든카드로 핵폭탄을 들었지만, 사실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겨울입니다.
[녹았던 땅]이 다시 얼어서 기갑 진격에 유리해지고 어쩌고 같은 건 사실 [미제 재블린]에 러시아 땅끄들이 몽땅 박살 난 지금에야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고...
우크라이나 군도 러시아군도 돈바스 지역의 영하 30도 날씨에 익숙할테니, 기후가 미치는 군사적 영향은 양군에 공평하게 더러울 것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마구잡이로 징집을 거듭해서 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병력이 대다수이며, 서방의 제재로 북한에서 탄약을 수입해야 할 정도로 난리가 난 러시아가 불리하면 불리했지 유리하진 않겠지요.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난방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으르릉 으르렁 으르렁 대던 전쟁 전에도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여 난방을 했습니다.
유럽으로 가는 가스, 석유관이 우크라이나를 통과한다는 것이 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고요.
그리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다시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Winter is coming...
우크라이나 인민들이야 뭐 러시아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이번 겨울이야 훈훈하게 보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유럽이죠.
러시아는 이미 노르드스트림 가스관을 잠궈 버렸고, 유럽으로 수출하는 에너지를 제한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유럽 일부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이 정도에서 물러나 러시아와 화친을 꾀해야 한다는 말을, 지들 주둥이로 하기는 좀 그랬는지 [키신저] 같은 사람들을 통해 뱉고 있습니다.
EU에서도 동유럽 러시아와 지근거리에 있는 폴란드 같은 나라들이나 강경한 입장이지, 저 멀리 떨어져있는 이탈리아라든지 하는 나라들은 우크라이나에게 항전을 포기하라고 바람을 넣고 있는 중입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푸틴을 독대하면서까지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며 설치기도 했죠.
말이 좋아 중재이지, 우크라이나에게 돈바스 지역을 포기하라는 압력에 다름 아닙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100만명 이상 받아주면서 아닌 척 하고는 있지만, 노르드스트림 가스관이 잠기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사태에 당면하자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는 중입니다.
한국이야 아직 더운 늦여름이지만, 이미 북유럽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인민들의 인내심이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요?
독일처럼 우크라이나 전쟁한다고 한달 10만원 하던 가스비가 100만원이 되면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에너지 못지 않게 식량 문제도 러시아에 유리한 변수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식량 생산을 방해하기 위해 밭에 불을 놓기도 했고, 수출선 항해 역시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 밀 농사는 올해 대풍년을 맞아 내수 수요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가스야 뭐 러시아에 남아돌고 있으니 에너지 문제도 없고, 국지전에서 전술적 패배를 당해도 일단 전선이 유지되어 겨울을 맞으면 러시아의 전략적 승리에 보다 더 가까워지는 셈이죠.
이번 겨울까지 어떻게든 버텨내면 EU와 NATO, 미국은 알아서 분열하리라는 것이 푸틴의 계산일 것입니다.
다가오는 겨울 난방비 식비 폭등을 "우크라이나를 위한 대의"에 겨워 감내 할 유럽인이 몇이나 될까요.
우크라이나 군이 요즘 열심히 힘을 내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도, 러시아 군에 맞서 이길 수 있다는 대외 선전을 위한 안간힘 짜내기에 가깝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요즘 부쩍 "이번 겨울이 전쟁의 전환점"이라느니, "크림 반도 회복"을 공언하는 것도, 격렬한 공세를 개시한 것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아무리 뛰어나고, 미국의 군수 물자가 아무리 무한에 가깝게 들어와도, EU에서 날아올 정치적 압력은 사실 러시아 핵폭탄 이상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빵값과 난방비 때문에 여론이 나빠져 지금 당장 정권이 무너지게 생긴 마당에, 유럽 정치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대의에 복무 할까요?
특히 헝가리, 세르비아, 몰도바 등에서 친 러시아 극우 정치 세력들이 정권 교체에 성공하고 있는등 정치적 핵폭탄의 기폭 타이머는 이미 똑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5. 달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 달러가 무슨 변수일까 싶지만, 4번의 겨울, 즉 에너지와 식량 문제에서 이어집니다.
미국은 자국 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습니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기준 금리가 오르면 올랐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결국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식량 난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말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에서 취하는 금리 인상 조치를 그저 두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민주주의 최대의 약점 "다음 선거"가 작동하고 있는 중인 것이죠...
그렇다고 중간 선거 이후 강달러에 변화가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달러화 강세는 결국 우크라이나에게도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유럽 인민들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기에 한 방 얻어맞고 휘청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미국에서 날아온 달러 환율에 삼연타 당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 유럽인들에게 #SaveUkraine 해시태그 같은 게 씨알이나 먹힐까요...
달러 환율 강세는 미국을 빼면 그 어느 나라에도 달갑지 않은 변수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일부 전술적 승리는 고무적이긴 합니다만, 전략적인 관점에서 러시아가 아직은 더 많은 패를 쥐고 있습니다.
푸틴은 언론을 탄압하고 정보를 통제하여, 전쟁이 반년이나 늘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도 8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겨울 추위로 EU가 알아서 분열하면 우크라이나 역시 알아서 굽힐 것이라 여기고 있을테니 협상에 나설 리가 없습니다.
젤렌스키 역시 최근의 전술적 승리에 고무되어 있어 협상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전선이 러시아쪽으로 크게 후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러시아의 기만 전술일 수도 있습니다.
병력을 재편성 후 날씨가 더 추워지면 대공세를 취해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어필 하려 들 것입니다.
전쟁은 향방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번 겨울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터닝 포인트가 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