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MBC 뉴스입니다.
1분 10초경부터 보면 됩니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X세대"라는 그때 그 시절 언니들의 말투.
딱 부러지고 시원합니다.
옷차림도 개성 있고 남의 시선 신경쓰지 않는 당당함이 있습니다.
당시의 TV뉴스 인터뷰가 대본을 가지고 연출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기는 있습니다만, 뭐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인터뷰 자체는 연출일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맥락이 있었으니 전파를 탔을 것입니다.
2016년 오늘 날 TV를 틀면 어떻습니까?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이 게스트로 등장 할 때마다 늘 "애교"를 요구합니다.
귀엽고 아이같은 말투를 쓰지 않으면 기가 쎄다고 합니다.
엠버에게 "여자답게 입으라"는 비난이 쏟아집니다.
"픽미 업"을 소곤거리며 주체성 없는 "선택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얼마전 민주당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죠.
심지어 정치인들도 여성은 "조곤 조곤" 말합니다.
은수미, 진선미 등 여성의원들의 말투와 남성의원들의 말투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합니다.
당당하고 딱부러지게 말하는 여성이 전멸했습니다.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여
옷차림에서도 성차별과 사회적 억압은 선명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조차 심지어 경찰들로부터, "그 밤중에 그렇게 입고 돌아다니니까"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SOUP 같은 "남자들이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내지는 "저는 무해합니다"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옷이 권장됩니다.
정장에 하이힐 대신 플랫슈즈를 신으면 "예의가 없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트위터에서 한때 이런 맥락에서 나온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여 해시태그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깐느 레드카펫에 하이힐을 거부하고 맨발로 입장하고 있는 줄리아 로버츠. 사진 / elle.com GETTY +
사진 출처 : [elle.com] GETTY+
...여기서도 덜떨어진 수컷들이 낄 곳 안 낄 곳 구분 못하고 끼어들기도 했습니다만(#여자_자기자랑 해시태그 때도 그랬죠)...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다는 당당한 말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옷차림과 외모에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외모와 옷차림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거부"한다는 맥락입니다.
그냥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다는 자기만족에서 끝나버리면 그건 그냥 패션쇼나 다를 바 없죠.
외모와 옷차림에 대한 품평을 단호히 거부하고, 옷차림에 대한 자유를 누리겠다는 선언입니다.
물론 옷차림은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소위 "무해한" 옷차림에 대한 선택은 존중 받아야 합니다.
그건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유로운 옷차림에 대한 이야기를 "폭력"이라고 헛다리 짚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나만 당당해진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요." [링크]
이런 걸 자기검열이라고 하죠...
이런 자기검열에 제일 좋아할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당당해지기 위해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여 가 있는 겁니다.
옷차림, 외모에 대한 부당한 품평과,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성차별, 그것을 인식하고 저항하자는 이야기죠.
그럴만한 담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쎈 옷차림"을 "강요"한 사람도 없었거니와... 더군다나 "자기 몸을 사랑하라"는 말은 폭력이 아닙니다.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여 나, 자기 몸을 사랑하는 조언이 폭력적이라고 느껴진다면, 남성 중심의 성차별적인 시선에 완전히 제압당해 있다는 얘깁니다.
움츠러들어 "무해한 옷차림"만 고수하면 결국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고, 성차별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만 줄 뿐입니다.
1994년만 해도 TV에서, 그것도 제일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지상파 프라임 타임 뉴스에서 볼 수 있었던 저런 "쎈 언니"들이 지금은 모조리 없어졌다는 것이 참 암담합니다.
TV에서 똑부러지게 자기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구사하는 여성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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